디지털 시대, 실체 없는 이미지의 복제와 소비 속 새로운 감각
롯데뮤지엄, 《옥승철:프로토타입(PROTOTYPE)》 개최
옥승철 작가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서베이 개인전…8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디지털 시대 속 이미지를 감각하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
초기작부터 신작 아우르는 회화, 조각 등 80여점 선보여
소프트웨어 유통방식에서 착안한 전시 구성…
비선형적 동선으로 관람객이 주체가 되는 관람 경험
롯데문화재단(대표 김형태)이 운영하는 롯데뮤지엄은 옥승철 작가의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을 8월 15일(금)부터 10월 26일(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신작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서베이 개인전으로 옥승철 작가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국내외 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옥승철(b.1988) 작가는 원본성과 실재성, 디지털 이미지와 물성을 가진 작품 사이에 형성되는 관념들을 탐구해왔다. 그는 캐릭터의 얼굴이라는 구상화의 틀 안에서 만화, 영화, 게임 등 시각 매체 안에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주된 디지털 이미지를 작품의 원본으로 삼는다. 이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벡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이미지를 캔버스, 물감 등 전통 매체를 활용해 회화, 조형 등의 방식으로 출력해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예술 작품의 ‘무거움’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긴장감과 모순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전시 《프로토타입(PROTOTYPE)》에서 옥승철 작가는 현대의 시각문화 속에서 이미지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미지는 실체 없는 상태로 복제, 소비되며 인쇄물이나 전시 공간 같은 유통을 위한 물리적 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와 같은 비물질적 유통 구조에서 착안해 전시공간을 소프트웨어 유통 방식인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를 모델로 설계하여 전체 전시장을 하나의 가상 공간으로 연출했다.
롯데뮤지엄의 전체 400여 평에 이르는 공간은 가운데 십자 복도를 중심으로 전시명과 같은 ‘프로토타입-1’, ‘프로토타입-2, ‘프로토타입-3’으로 명명된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독립된 비선형적 동선을 구축하면서도 십자 복도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관람객이 주체적으로 각기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섹션을 관람한 관람객은 다시 시작지점으로 돌아와 다음 경로로 관람을 이어나가며 이미지의 호출, 변형, 유통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디지털 환경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전시의 시작점인 십자 복도의 녹색 조명은 크로마키 초록색을 모티프로 한다. 크로마키는 방송이나 영화에서 배경 합성에 사용되는 기술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상징하며 다음 전시 공간으로 ‘로딩’되는 듯한 감각을 시각화해 이후 펼쳐질 세 개의 전시 섹션으로의 진입을 매개한다.
‘프로토타입-1’ 섹션의 첫 공간에는 높이 2.8m에 이르는 대형 조각 신작 <Prototype> 세 점이 설치된다. 거울과 조명이 조각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공간을 가상 현실처럼 연출하며 전시의 출발점으로서 ‘기본값’의 시각적 조건을 설정한다. 다음 공간에서는 증명사진을 모티프로 삼아 인물의 정체성과 형태를 탐색하는 <ID Picture> 시리즈와 거울을 활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시각화한 <Outline> 시리즈가 이어진다. 마지막 방에서는 <Canon> 시리즈 등 고전 석고상을 연상시키는 무채색의 드로잉, 평면 조각, 회화 작품이 등장한다. 실존 인물 ‘줄리앙’의 흉상에서 출발해 대리석, 석고상, 회화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변형 흐름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의 이미지 소비 구조와 겹쳐지며 ‘원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프로토타입-2’ 섹션은 헬멧과 고글을 착용한 인물들이 전투에 임하는듯 한 <Helmet>, <Player> 등 주요 회화 시리즈로 구성된다. 회화의 평면성에 의해 충돌 직전 정지한 듯 마주본 얼굴들은 비활성화된 전장을 연상케 하며, 관객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이미지의 의미가 충돌하거나 무력화된다. <Mimic> 시리즈는 주변 환경과 타인을 모방하며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자아의 상태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늘어나거나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통해 무한히 복제된 자아를 상징한다.
‘프로토타입-3’ 섹션은 반복을 통해 감각이 무뎌지고, 익숙함이 오히려 불편함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약물의 내성처럼 반복되는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감각을 은유한 회화 신작 <Tylenol>,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녹차처럼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주목한 <Taste of green tea>, 하나의 상징이 서로 다르게 인식되는 상황을 다룬 <Under the same moon> 등은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는 감각이 실은 나열된 습관의 호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 <Trophy>는 첫 번째 섹션의 대형 조각 <Prototype>과 연결되며 전체 전시를 수미상관 구조로 마무리 짓는다.
전시명 ‘프로토타입(PROTOTYPE)’은 본래 대량 생산 전 단계에 시험 제작되는 시제품을 뜻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를 하나의 고정된 원형이 아닌 계속해서 호출되고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데이터베이스로 해석한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가 단 하나의 완성본이 아닌, 무수한 버전으로 존재하고 유통되는 오늘날의 이미지 환경을 반영한다.
옥승철 작가는 '점차 시리즈와 작업 방식이 다양해지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한 번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며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화 작업 외 조각 등 다양한 작업 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롯데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및 인터파크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성인 티켓 가는 20,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티켓 가는 13,000원이다.
■ 전시 개요
전 시 명 《옥승철:프로토타입(PROTOTYPE)》
전시기간 2025.08.15.(금) - 2025.10.26.(일), 총 73일
전시장소 롯데뮤지엄(롯데월드타워 7층 · 에비뉴엘 6층)
참여작가 옥승철
티켓가격 성인 20,000원, 청소년/어린이(만 3 – 18세) 13,000원
문 의 1544-7744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2025.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 작가 소개
옥승철(b. 1988)은 원본성과 실재성, 디지털 이미지와 물성을 가진 작품 사이에 형성되는 관념들을 탐구해왔다. 그는 만화, 영화, 게임 등 시각 매체 안에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주된 디지털 이미지를 원본 삼아,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는 물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이를 출력하고 생성해 낸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미술 작품의 ‘무거움’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모순에 주목하는데,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와 유일성을 지닌 미술 작품 사이의 긴장감은 그를 매개로 회화와 조형으로 탈바꿈된다.
옥승철에게 회화는 복원해야 할 전통이 아닌, 전시 기획과 공간에 따라 크기와 목적을 달리하며 3차원 오브젝트로 확장될 수 있는 ‘시작점으로서의 원화’다. 그의 작업은 컴퓨터 프로그램 내부의 벡터 좌표에서 출발하며,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전통 매체를 통해 자신이 절대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좌표를 현실로 출력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점의 변화를 넘어, 이미지의 본질 자체를 조금씩 다르게 그려내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 생성기처럼 머리카락 색이나 피부 톤 등 일부 요소만을 바꾸어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개체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닮아 있다. 원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캐릭터의 얼굴이라는 구상화의 틀 안에서 합성되고 재해석된다. 이처럼 그가 떠올리는 개념들은 디지털공간에서 시각화되고, 이는 다시 그의 손을 거쳐 다양한 물질과 표면에 재현된다.
옥승철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3년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학부를 졸업했다. 파르코뮤지엄(도쿄, 일본, 2024), 투스데이 투 프라이데이(발렌시아, 스페인, 2024), 아트선재센터(서울, 한국, 2022)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부산현대미술관(부산, 한국, 2024), 쉐마미술관(청주, 한국, 2023), DMZ 파주(파주, 한국, 2023), K11(상하이, 중국, 2023), 대전시립미술관(대전, 한국, 2021), 대구미술관(대구, 한국, 2019),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서울, 한국, 2019) 등의 기관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 전시 소개글
《프로토타입 PROTOTYPE》은 디지털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미지가 감각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미지는 더 이상 하나의 ‘원본’을 기준으로 질서를 이루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각 문화는 복제, 변형, 유통의 반복을 통해 감각의 흐름을 구성하며, 이미지들은 유사성과 차이의 연속 속에서 계열적으로 분기해 나간다.
작가 옥승철(Ok Seungcheol, b. 1988-)은 이 같은 이미지 환경의 구조를 회화와 입체 작업을 통해 탐색해왔다. 특히 그의 회화는 고정된 재현의 장르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미결정적인 상태를 구성하는 예술적 시뮬레이션의 장으로 기능한다. 그는 현대의 시각문화, 특히 이미지의 ‘소비’와 ‘유통’ 양상에 주목한다. 복제된 이미지는 실체 없는 상태로 소비되며, 그 유통 경로는 더 이상 인쇄물이나 전시 공간과 같은 물리적 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는 소프트웨어처럼 실체 없이 배포되는 전시 구조인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를 모델로 공간을 구성한다. 무심히 나열된 작품들은 언제든 호출되고 배포될 수 있는 다양한 ‘버전’들로 존재한다.
롯데뮤지엄의 전체 공간은 Prototype 1~3으로 명명된 전시실로 구분되고, 각 전시실은 다시 여러 개로 분기하며 마치 선택지와 같은 효과를 갖게 된다. 하나의 전시실을 관람한 후에는 다시 중앙 통로로 되돌아가야 한다. 전시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의 흐름을 이해하고 기억하게 된다.
‘프로토타입’은 원래 반복될 무언가의 첫 형상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옥승철에게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원형이 아니라, 언제든 호출되고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데이터베이스에 가깝다.
《프로토타입 PROTOTYPE》에 전시된 그의 구·신작 80여 점은 복제, 유통이 일상화된 현대 이미지의 순환 구조 속에서, 고정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감각되는지를 보여주는 열린 과정인 셈이다.
현대 이미지의 환경과 구조는 관점에 따라 분열되는 기억과 해석의 차이를 시각화하며, 유통된 정보와 다층 시점의 허상을 드러내기 위해 섬세하게 조정된다.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아는 오히려 더 불투명하게 조립된다. 옥승철의 반복되는 얼굴들은 이 불안정한 구조와 균열의 초상이다. 다채롭게 모방되고 변주되는 형상들은 복제와 유통이라는 시각적 조건 위에 구축된다. 여기서 관객은 오늘날 이미지 환경의 구조를 감각을 통해, 이미지 환경을 스스로 구성하고 해석하는 존재가 된다.
■ 전시 구성 및 주요 작품
PROTOTYPE 1-1
《프로토타입 PROTOTYPE》은 복제와 유통을 전제로 한 디지털 이미지 환경 속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감각되고 존재하는지를 탐색하는 전시다. 작가 옥승철은 ‘원본’이 라는 개념이 더 이상 실체로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서, 비워진 그 자리를 이미지가 어떻게 점유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이 구간은 전시의 출발점이자 ‘기본값’의 시각적 조건을 설정한다. 〈Prototype〉은 단일한 원형이 아니라, 끝없이 복제, 변주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임시 고정된 좌표다. 이 평면과 입체들은 감정도, 표정도 없이, 언제든 다른 형식으로 대체 가능한 스킨처럼 작동한다. 도안 이전의, 즉 시뮬레이션 단계의 상태를 지칭한다.

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전경, 롯데뮤지엄, 2025.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1-2
증명사진과 초상이라는 장르는 본래 고유한 신원을 드러내기 위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옥승철이 그리는 얼굴들은 오히려 특정되지 않으며, 변조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전통적인 평면 회화의 한 장르는 현대에 이르러 ‘표현’이 아닌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ID picture, 2021, Acrylic on canvas, 220x180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1-3
이미지와 조각은 완성을 향하지 않는다. 고전을 흉내 내는 듯한 다채로운 무채색의 평면과 입체 작품들은 상징성이 아닌 익명성으로 인식되며, 두께와 무게를 상실한 채 껍질만 남겨져 있다. 삭제와 생산이 동시에 일어나는 듯한 중첩된 표면은 물질성을 강조하기 보다, 생성 과정의 잔해임을 드러내고 있다.

Canon, 2024, Oil on canvas, 150 X 150 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2-1
옥승철의 회화는 디지털 이미지의 반복, 조합, 시뮬레이션, 필터링 등의 과정을 거쳐 프로토타입으로서 제시된다. 초기 디지털 벡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이미지를 회화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비물질적인 디지털 이미지를 물리적인 형태로 전환한다. 표면은 붓질의 흔적이나 재료의 질감을 배제한 채 매끈하게 처리되며, 경계와 선은 마스킹 기법을 통해 정밀하게 구획된다. 이러한 방식은 회화의 감정적 서사를 유도하는 재료의 우연성과 질감을 차단하고, 디지털 이미지의 평면성과 선명함을 회화의 물리적 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그의 조형물이 가상의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크기와 재질감은 모두 임시적인 선택의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다.
회화의 과도한 평면성이 작동하는 이 전시장은, 마치 비활성화된 전장처럼 보인다. 마주본 얼굴들은 충돌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으나, 정지되어 있고, 무기화되지 않은 채 대기 중이다. 여기서 회화는 어떤 서사도 개입하지 않은 채 극도의 긴장 상태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매체다. 움직이지 않지만, 관객의 위치와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가 충돌하거나 무력화된다. 관객은 ‘얼굴’이라는 껍데기를 통해 네트워크 환경에서 작동하는 초상의 상태를 탐색한다.

(좌) Helmet, 2018, Acrylic on canvas, 90 X 90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우) Helmet, 2018, Acrylic on canvas, 120 x 120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2-2
얼굴들은 서로를 흉내 내고 복제되고 있지만, 미묘한 오차 속에서 정체성은 균열되고, 자아는 끊임없이 꿈틀댄다. 이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시차와 위장을 품은 ‘모방’이다. 오차와 위장, 불일치가 얽히며 변화하는,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제시된다. 초상이 반드시 거울에 비친 이미지만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듯, 그의 회화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자기를 인식하는 일시적인 조립 상태’를 보여준다.

Mimic, 2021, Acrylic on canvas, 140 X 170 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3-1
옥승철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끝내 남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반복을 통해 감각이 무뎌지고, 익숙함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유사한 구도의 초상들 속에서 달라진 표정, 머리카락, 시선은 기억과 감정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동일한 사건이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으로 분기되는 과정이며, 분기된 감정과 사건은 하나의 관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경험이 계속될수록 반응은 점차 흐려진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와 ‘피로감’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같은 찻잎을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맛이 변하는 것, 진통제에 반복 노출되면 내성이 생기는 것 등, 되풀이될 때 기존의 인식을 조금씩 빗겨가는 의미를 담은 작품들은,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는 감각이 실은 나열된 습관의 호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현대인의 감정은 목록(database)처럼 저장되고, 다시 호출되는 형식(cache)으로 소비된다. 언제든 휘발할 수 있으며, 다시 만나면 낯설다.
*cache :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나 값을 미리 복사해 놓는 임시 장소

Tylenol, 2025, Acrylic on canvas, 80 x 160 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PROTOTYPE 3-2
그가 그리는 얼굴들은 하나의 레퍼런스에서 연유하기보다는 애니메이션, SNS의 프로필 등, 수 많은 이미지 아카이브 속에서 수집된 환영들의 조합이다. 관객은 이 과장되고 과도하게 정제된 조각 모음을 마주하며, 그 안에서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불쾌한 정서가 떠오른다. 이는 작가 개인의 ‘기억된 파편들’에 불과하지만, 정작 관객은 역사와 사회, 대중문화와 같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임을 인지한다. 작가는 독창성, 진정성, 몰입 등 예술을 구성해온 본질적 가치들이 디지털 이미지의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조망한다.

Prototype, 2025, Acrylic on canvas, 210 x 240 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