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이예승 개인전 《다락: 기억·구름·신기루》
- 전시기간 : 2025년 10월 13일 (월) – 11월 29일 (토)
- 전시장소 : 페리지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18 KH바텍 서울사옥 B1)
- 기자간담회 : 2025년 10월 15일 11AM
- 오 프 닝 : 별도 행사 없음
- 관람시간 : 월-토, 10:30~18:00 / 일요일, 공휴일 휴관 // 토요일 Break time 12:00-13:00
- 문 의 : 모희 큐레이터 (070-4676-7091)
전시 소개
이예승은 VR, AR, 3D 프린터, AI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작업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 《다락: 기억·구름·신기루》에서 관객은 공간 입구에 놓인 실을 손에 쥐고 들어서 커튼으로 구획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인 ‘다락’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 있는 창고를 뜻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방학을 맞아 시골의 외갓집 혹은 먼 친척 집을 방문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미지의 장소 앞에서 호기심이 발동하고, 마침내 낯선 곳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모험이 주는 떨림과 두려움, 설렘과 같은 복잡한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현실의 장소로 돌아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경험은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작가에게 다락은 이러한 이동과 접촉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현실이자 비현실의 공간이며, 무언가 남겨진 비물질적 장소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 실체를 가진 현실은 가상의 세계와 지속적인 접촉을 하고 있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우리는 큰 세계의 끝자락만 더듬으며 넓고 깊은 시공간을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기억을 호출한다. 기억은 이미 지나가 버려 비현실이 된 것을 다시 현실의 실재로 불러오는 과정으로서, 머릿속 흐릿한 이미지를 명확한 장면으로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비물질적으로 존재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낯익은 형태, 색, 빛, 그림자, 냄새, 촉감과 기존 경험을 동시에 소환하는 일이다. 작가가 말하는 기억은 명확한 인식이 아니라 불명확하고 흐릿하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에 가깝다. 그는 커튼 뒤 설치물들을 통해 관객 각각의 잠재된 기억이 작업과 접촉하는 순간 새로운 인식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현재 우리의 기억은 내부에 쌓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영상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 글과 같은 기호로 남겨진다. 기억을 외부에 저장하는 방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모든 것은 디지털화되어 다양한 장치를 통해 자동으로 옮겨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구름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클라우드 서버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억을 꺼내어 보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SNS처럼 나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단면을 온전한 나의 것으로 확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개별 기억은 공동의 기억으로, 실재에서 벗어나 새롭게 공유되는 공동의 감각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또 다른 현실로 가져와 계속해서 변형시키며 적용해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커튼을 열고 닫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접촉의 움직임, 공간에 앉아 글을 읽거나 전시 전체를 관조하는 정적인 행위를 통해 기억과 감각을 응시할 수 있다. 작가는 여전히 감각적 접촉과 관념적 사유를 통해 획득되는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기억의 가능성을 믿는다. 나아가 객관적으로 쌓여가는 정보와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 경험이 서로 접촉하는 사이의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 태도에 집중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균형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와 성찰은 지금도 유효한 방식일까?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느끼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여기’와 ‘저기’의 사이뿐 아니라 시간적 거리도 포함된다. 우리가 작품을 본다는 것은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신기루는 외부의 자연현상을 외부의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내 사라져 허구임이 드러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존재했던 현상임이 틀림없으며, 신기루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어떤 정보든 즉시 전달되는 오늘날, 우리는 시간적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서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밀착된 시간은 우리에게서 숙고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뒤에는 그저 무엇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만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전시장은 물질의 존재 양태인 형태, 밀도, 움직임 외에도 빛, 색, 공기와 같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시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허상인 신기루를 현실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실재로 남겨놓기 위해 서로의 거리를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억, 구름, 신기루의 다층적 상황은 현실이든 비현실이든 내가 지금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실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현실 속의 비현실인 전시장에서, 관객이 손에 쥔 얇고 가는 실은 내가 어떤 현실에 있음을 알려주는 도구로 작용한다. 지금의 감각과 관념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 현재의 관념과 감각이 접촉과 끊어짐을 반복하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관계를 드러낼 뿐이다. 일시적 경험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온전한 것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말하는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예승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공유 가능한 가상, 공유 불가능한 현실을 이어 나가며,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와 감촉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사유는 우리 손에 쥐어진 실처럼 어떤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금의 현실 혹은 비현실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며 계속해서 이 순간을 의심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
작가 소개 ㅣ 이예승(b.1974)은 VR, AR, 3D 프린터, AI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탐구해왔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증강 딱지본: 오래된 미래》(2025, 서울시청, 서울), 《와유소요(臥遊逍遙): 천천히, 느리게, 걷기》(2022, 청주시립미술관, 청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글로벌 프로젝트: 변수풍경》(2019,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 《동중동(動中動)•정중동(靜中動)》(2016,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등이 있다. 또한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한글연구소》(2025, 부산시민회관, 부산), 《내일 우리는》(202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어린이 미술관, 과천), 《눈 홉뜨기: 미디어 파사드를 위한 제안들》(2024, 대안공간 루프, 서울), 《대릉원 녹턴-신라의 혼, 빛의 예술로 밝히다》(2023, 대릉원, 경주), 《보물선 3.0 – 비밀을 여는 시간》(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Beyond the Scene》(2022, 토탈미술관, 서울), 《Data Jungwon》(2022, 수림문화재단, 서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0년 서울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최종 당선자로 선정된 바 있다.